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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일본인 독립유공자 , 후세 다쓰지 布施 辰治

스뭇 2016. 3. 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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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다쓰지 布施 辰治(ふせ たつじ)





일단글만 나열하면 지루하니 동영상부터





이분은 2차 세계대전중의 일본제국중에서 몇 남지 않은 양심인임과 


동시에 2차 세계대전중 인류애를 실천한 한분이야





이분이 하신 굵직한 행적을 쫓아보면 


1911년 「조선의 독립 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병합이 제국주의적 침략임을 규정하고 한국의 독립 운동을 지지 


그리고 이 글을 쓴 것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조사받음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음 


1919년  2.8 독립 선언의 주체였던 최팔용, 송계백 등을 변호하여 내란죄 혐의에 대한 무죄를 주장하였으며 

1924년 도쿄 궁성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인 김지섭의 변호를 맡았다.

또한 1923년에 발생했던 관동 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해당 사건이 일본 정부와 일본 경찰, 군부에 의해 조작된 유언비어로 인한 사건임을 강력하게 비판하였고,

조선일보에 이를 사죄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변호 행적 중 가장 유명한 예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변호. 두 사람은 덴노(즉 일왕)를 폭살할 계획을 세우다가 검거되어서

 덴노 폭살을 기획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 재판은 박열 대역 사건으로 불리며 일본 전역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후세 다쓰지는 두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옥중 결혼 수속을 대신 해 주었다.  

또한 후미코가 자살하자 그녀의 유골을 수습해 박열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에 매장을 해 줄 정도로 노력하였다. 




광복이후는 더 대단한데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변호사 자격을 회복한 뒤엔 한신 교육 투쟁 사건이나 도쿄 조선 고등학교 사건 등등, 


재일 한국인 사건 및 노동 운동에 대한 변호를 맡았고. 


1946년에는 한국을 위한 조선 건국 헌법 초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근데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이 개헌하면서 헌법정신이 갈가리 찢김 하 ㅠㅜ) 


이후 1953년 9월 13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심.




양력으로 짧게 적어보면


1911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지지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맡음 


일왕에 대한 암살미수사건에 대한 변호또한 맡음


전쟁이끝나서 자국이 뒤숭숭한 와중에도 옆나라 생각해서 헌법초안 작성해서 넘겨주심




역사학자를 꿈꾸는 개드리퍼가 있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일텐데 아는사람이 얼마 없어서 아쉽다.



출처 :

개드립 - 인지도가 안습한 독립유공자 ㅠㅜ ( http://www.dogdrip.net/9252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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