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선거가 목전에 다가온 지난 7월 8일 오전 11시 30분, 킨테츠 야마토니시다이지 역앞에서 응원연설을 위해 단상에 올랐던 아베 전총리가 배후로부터, 돌연 두발의 총탄이 발사되고 하얀 연기가 올랐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건에, 1발째에 주변의 SP(호위경찰)들도 대응을 하지못했고, 2발째에 뒤를 돌아본 아베 총리의 좌흉부와 목을 관통하였다. 심정지 상태로 나라현립의과대학부속병원에 닥터헬기로 반송되었으나 필사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같은날 오후 5시 3분에 사망이 확인되었다.
총격에 사용된 수제총 "간단히 만들수있는 물건은 아니야"
연설중인 아베 전총리를 총을 발포하여 살해를 노려, 살인미수로 현행범체포 되었다. 야마가미 용의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약 3년간, 해상자위대의임기제자위관으로 근무한것이 확인되고있다. 자위대관계자에 따르면, " 임기제 자위관은 이른바자위대의 비정규직입니다만, 연 1회는 실탄사격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라며,사격의 기본은 배웠다라고 진술했다.
" 현장에서 압수한 길이 40센치, 높이 20센치의 수제총으로, 약 10미터 지근거리에서의 발포였습니다. 가택수사결과, 나라시 오오미야마치의 자택멘션에서다른 수정의 수제 총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사용되어진 총은 1통에 6개의 탄환이 들어가있었고, 그것이 약 3통 있었습니다.결코 간단히 만들수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
( 수사관계자 )
자택의 가택수사도 사건당일 17시부터 진행되었다. 오후 6시가 지나고 폭발물을 이송할 특수차량도 도착하였다. 현립경찰은 "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것을 꺼낼예정이 떨어져 주세요. 엄폐물이 있는 장소에 숨어주세요 " 라고 주위의 보도진이나 인근주민들에게 큰소리로 경고해 일대소동이 벌어졌다.
방호복을 몸에 감싸고 수사관은, 검은 검테이프로 칭칭감겨진 다수의 원통형의 물건을 꺼내었다. 원통형의 물건은 빨간색의 도선이 달려있어, 현장에서 목격된 수제총기와 닮아있었다. 오후 9시반에는 "새로운 위험물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어 경찰은 맨션의 주민이나 인근주민들에게 피난을 권고하기도 하였다.
폭발물을 제작했던 자택에서는 " 정이 메마른 사람 "
" 아베 전총리는 응원연설예정을, 전날밤에 급히 격전구인 나라시로 변경했습니다. 얼핏보면 우연히 고향에 방문하는 아베 전총리를 노린 충동적 범행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야마가미 용의자는 체포후 취조에서 [처음은 소형 다이너마이트로 죽이려했지만, 실험해보니 어렵다는걸 알았다.봄쯤에는 이미 총을 수 정 완성한 상태였다 ] 라고 구술하였다. 원래는 종교단체관계자를 노렸다라는 이야기도 나오고있지만, 어찌됐든간에 꽤오래전부터 준비된 계획적 범행일 가능성이 있다 " (수사관계자)
야마가미 용의자는 범행현장인 나라시 출생으로, 1999년 고향의 명문진학고를 졸업, 그후 2020년 가을부터 올해 5월까지는 파견회사원으로서 교토부내의 플라스틱 회사의 창고에서 일하고있었다. 용의자가 체포당시까지 살고있던 맨션의이웃남성은 야마가미용의자가 음울한 인상이었다고 회상한다.
"지난 1년간 야마가미 용의자를 본 적은 다섯번 정도에요. 그는 아침 6시에 출근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는 정도였지요. 복장은 평범했고 제가인사를 건네도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눈을 피하거나 하는, 정이 메말라 보이던 사람이었지요 "
유년기의 야마가미 용의자를 알고있는 고향의 주민들은 이렇게 입을 모으고있다.
" 아직 어릴무렵에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쪽의 조부께서 사시는 집으로 이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아장아장 걸음마때던 여동생이 한명있어서, 자주 할아버지와 집 옆에있는 공터에서 무선조종차로 놀고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조부는 회사를 경영하는 풍격이 있는 분이었습니다만, 그 때만큼은 온화한 얼굴을 하고 미소를 띤 광경이었지요. 집안에서도 여동생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곤 했죠.
그렇지만 오빠쪽( 용의자 )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히키코모리가 되어 집에서 전혀 나오지않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부친이 먼저 돌아가시고 난 뒤,의지했던 할아버지도 타계하셔서,어머니는 이웃마을로 이사했다고 합니다.매일이 고통스런 나날이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
아먀가미 용의자의모친은 1999년에 아버지의 집을 팔고 2002년엔 파산신청을 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고경제난에 허덕이는 일가였지만, 가정이 제대로 돌아가지않은 이유중 하나는어머니와 자식들 간 종교를 놔두고 갈등한 것도 있다고 한다.
" 모친은 어느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야마가미 용의자도 그 영향을받아 회원이 되었지만, 얼마되지않아 탈퇴. 그 후 야마가미 용의자는 모친의 종교단체의 분파단체에 소속했던 모양이지만,모친이 소속된 단체를 원망하여 대립이 있었던것같습니다.모친이 소속되어있던 단체는 아베 전총리와의 관계도 깊다고 알려진 단체로,그것을 이유로 아베총리를 적대시하게 되었다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야마가미 용의자는 조사에 대해 [ 정치신념에 관련된 원한이 아니다 ] 라고 말하면서 [ 특정단체에 원한이 있어, 아베전총리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범행에 이르렀다 ] [그 단체 탓에 가족이 붕괴되었다] 라고범행의 동기를 설명하고있는 모양입니다 " (수사관계자)
야마가미 용의자가 "위험 인물"이 된 시기는?
이미 상술한대로, 야마가미 용의자는 02년부터 05년의 약 3년간, 해상자위대의 임기제자위관으로 일한적있다. 8일 저녁에 실시된 가택수사에서는 수제 총기 수 정과 폭발물이 압수되어 인근주민에서 대피령이 떨어지는등, 야마가미 용의자는 얼핏보면 누가봐도 "위험인물"로 보인다.
야가가미 용의자의 인상해 관해, 인근주민은 " 인사도 받지않는 매정한 인상 " 이라고 평하는 한편으로 학생시절의 지인들은 이러한 최근의 모습과의 갭에 충격을 받은 인상이다.
"야마가미군과는학생시절에 자주 놀았습니다. 근처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공원에서 도지볼을 하거나, 코인세탁소에 있던 소년점프를 같이 읽은적도 있었습니다. 집에 초대받은 적도있어서 함게 패미컴으로 마리오도 했더랬지요.어머님도 좋은 인상의 자상한 분이셨고 놀러갔을적에 차를 내어주셨던 것도 기억합니다. 어른스러운 아이였는데,설마 이런 사건을 일으킬 사람으로는 보이지않았습니다" ( 어린시절 친구 )
" 이름이 테츠야라서 중학생시절에 애정을담아 [코테츠]라고 불렀습니다.농구부에 소속되어 운동신경도 좋고현내 유일의 진학교에 갈수있을만큼 머리도 좋았더랬지요. 그랬던 아이가 일본을 뒤흔든 이런 대사건을 일으킬거라고는....." (중학시절의 동창)
다른 초중고 동창생도 "어쨋든 머리가 좋았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성적은 항상 톱이었어요. 테스트도 상위단골조였지요. 수업중에 어려운 문제를 해설하기위해 선생님으로부터 지명되는 일이 자주있었습니다. 가끔은 공부를 위한것인지 엄청 두꺼운 책을 쉬는 시간에 읽곤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운동치도 아니고, 오히려 쉬는시간에 친구들과 교정에서 도지볼을 하는 모습을 자주볼수 있었습니다.
교복을 제대로 맨 윗단추까지 잠그는성실파 학생으로, 항상 청결감이 있었어요. 여자친구가 있다던가 들어본적없고 오히려 그런 부분에 관심이 없는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들로부터미움받은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 용의자의 어린 시절. 출처 - 문춘온라인, 용의자의 지인 )
야마가미 용의자의 별명은 초등학생시절부터 "코테츠"였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농구부에 재적, 활발한 학생시절을 보내고 나라현 굴지의명문진학교에 진학한다. 중학생 시절엔 성적도 좋고,문무양도文武両道의 학생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용의자의 고등학교 동창도 풍요로운 고교생활을 구가하던 용의자를 떠올리며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단장]이라 불리우는 괜찮은 애가 있어" 용의자의 학생시절
"저는 야마가미군보다 1년 선배였습니다만, 선생님이 야마시타군을 [<단장>이라 불리우는 아주 괜찮은 아이가 있어]라고 수업중에 소개했던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응원단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야마가미군은 키가 작고 왜소한데도 [ 불균형한 신장차 가운데서도 다른 멤버들에게 지지않고 열심히하네 ] 라는 인상이 있습니다. 야마가미군은쾌활하게 활동했으므로 역시 전통명문고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과거에 자위대원을 했다는데 딱 어울리는 이미지였지요 "
( 중학생 시절의 용의자. 별명인 코테츠가 적혀있는게 확인된다 출처 - 상동 )
" 우리 야구부는 98년도 봄의 선발대회에 출전해 ' 헤이세의 괴물 ' 마쓰자카 다이스케씨를 지닌 요코하마 고교와 대결했습니다. 공립고교이면서도 전국대회에서도 연승했던것은 쾌거로서, 교내의 학생은 모두 기뻐했더랬지요. 결과는 완패였지만 야마가미군도 그 곳에 소리높여 응원했을테고, 당시의 야구부원은 전원 그에대해서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청춘시대를 함께 보낸 사람으로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
순탄한 학생시절을 보냈던 야마가미 용의자이지만, 전락하게 이유는 무엇일까? 야마가미 용의자가 유년시절 살았던 집 인근의 주민은 이렇게 밝혔다.
"본래의 가정환경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용의자의 조부는 건설관계회사를 경영하였고 골프를 좋아하는 품격있는 신사였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아버님도 지적인 분위기가 있고 고급차를 타고다녔습니다. 어머님은 날씬하고 기품이 있는 아가씨의 이미지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품격있는 일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버님이 고통끝에 불운하게 돌아가신 후 의지하던 할아버님도 돌아가시고 맙니다. 어머님은 결국 용의자와 여동생 둘을 데리고 집을 나갔지만, 그 사이에[ 종교에 입문하고 싶어 ]라고 저에게 상담을 청해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신변의 불운이 쌓여,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었을것이라 생각해요 "
수사관계자에 따르면 야마가미 용의자는" 어머니가 종교단체에 집착한탓에 원한이 생겼다 "" 집을 파산시켰다 "라고 범행동기를 진술하고 있다.
학생시절부터 야마가미 용의자는 모친과의 생활을 지속했던 모양이지만, 이러한 경제적인 요인이 계기가 되어 최근에 와서는 현재의 나라시 오오미야마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