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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의 어머니께 쓴 편지 "심훈 "

스뭇 2019. 3. 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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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여러가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옥중에서의 편지
옥중에서의 글월
감옥에서 어머니께 쓴편지

그러나 정확한 제목은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입니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심훈 "

 

"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 적삼 차입해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지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 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를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나 들어가는 듯 하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들어 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삼자도 떼어버리려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간도 못되는 방 속에 열아홉 명이나 비웃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장이도 있구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 밖에는 그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쪼이고 주홍빛의 벽돌 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은 어머니가 몇천 분이요 몇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 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먹기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 내리고 높은 담 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 둘 생기가 나서 목침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니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다운 듯 먼 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 1919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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